실전 비즈니스 영어 #0192026-11-02

AI가 번역해 주는 시대에도 영어를 배워야 하는 6가지 이유

미국 제약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AI를 매일 쓰는 사람의 이야기

줄 쳐진 노트에 손으로 쓴 'AI can translate. I still need English.' 문구와, 'Draft ready' 말풍선이 뜬 노트북, 'That's an interesting approach.', 'Let me double-check and get back to you.' 같은 영어 문장이 적힌 포스트잇들

요즘 회사에서 쓰는 이메일 프로그램(아웃룩)과 메신저(팀스)에는 AI 비서(Copilot)가 들어 있습니다. 받은 이메일에 자동으로 답장 초안을 써 주고, 제가 쓴 문장을 다듬어 주기도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는 Claude 버튼이 있어서 몇 번 딸깍하면 순식간에 번역은 물론이고 내가 원하는 글 작성,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작성까지 알아서 척척 해 주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이제 영어를 열심히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미국에서 10년 넘게 연구소와 여러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이 도구들을 매일 씁니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쓸수록 분명해지는 점이 있습니다. AI는 영어를 대신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영어를 아는 사람의 속도를 높여 주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이 글은 AI를 멀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AI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라도 영어가 필요한 이유를, 현장에서 직접 겪은 순서대로 여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스피드: 직접 쓰는 쪽이 결국 더 빠릅니다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많은 이메일을 읽고 답해야 합니다. AI에게 답장을 맡기면 흐름이 이렇게 됩니다. 요청을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읽어 보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치고, 내용이 맞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이 시간을 모두 더해 보면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 직접 쓰는 시간보다 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한두 줄짜리 답장이 대부분인 일상 업무에서 차이가 특히 큽니다. "Thursday works for me. I'll send the invite." (목요일 좋습니다. 초대장 보내겠습니다.) 이 한 줄은 직접 쓰는 데 10초면 충분합니다.
  • AI가 쓴 초안에는 제가 직접 쓴 글 같지 않은 단어와 문장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한 문장씩 제 말투로 고쳐 쓰게 됩니다.
  • 중요한 이메일일수록 마지막 검토는 제가 합니다. AI가 초안을 만들어도 제 시간이 줄지 않는 구간이 여기입니다.

AI는 초안을 잡거나 긴 글을 요약할 때 유용합니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에서 제 자리를 대신할 정도는 아직 아닙니다.

2. 검수 능력: 어색한 곳을 알아보는 것도 영어 실력입니다

AI가 쓴 영어는 문법이 정확합니다. 문제는 톤입니다. 같은 내용이어도 요청이 지시처럼 들리고, 사과가 변명처럼 들리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이 차이를 알아보려면 영어를 읽는 눈이 필요합니다.

  • "I need the updated data by Friday." (금요일까지 업데이트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문법은 맞지만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보내면 거칠게 읽힙니다.
  • "Would it be possible to get the updated data by Friday?" (금요일까지 업데이트된 데이터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같은 요청을 부드럽게 바꾼 문장입니다.
  • 지연을 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Sorry for the delay, there were many issues with the assay."는 이유를 늘어놓는 변명처럼 들립니다. "Thanks for your patience. The assay needed a repeat, and I'll share the results by Wednesday."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세이를 한 번 반복해야 했고, 수요일까지 결과를 공유하겠습니다.)처럼 사실과 다음 일정을 말하면 신뢰가 유지됩니다.
  •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인사말이 맨 앞에 붙어 있어서 가까운 동료에게 보내기엔 어색한 경우도 흔합니다.

틀린 줄 모르고 보낸 이메일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특히 임원, 규제기관, 외부 파트너에게 가는 글은 영어를 아는 사람이 마지막 눈이 되어야 합니다.

같은 요청도 'I need the updated data by Friday.'는 요구처럼, 'Would it be possible to get the updated data by Friday?'는 정중한 부탁처럼 읽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손그림 이메일 두 장
같은 요청도 'I need the updated data by Friday.'는 요구처럼, 'Would it be possible to get the updated data by Friday?'는 정중한 부탁처럼 읽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손그림 이메일 두 장

3. 행간 읽기: 번역기는 단어를 옮기고 의도는 옮기지 않습니다

미국 직장에서는 반대 의견이나 거절을 돌려서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단어만 번역하면 반대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 "I'm curious about how you handled the controls." (대조군을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 그대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대조군 설계가 충분한지 묻는 이의 제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 "That's an interesting approach." (흥미로운 접근이네요.) 칭찬일 수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완곡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과 목소리 톤을 함께 들어야 합니다.
  • "Let's take it offline." (따로 얘기하죠.)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자는 신호입니다. 이 표현은 take it offline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의도를 잘못 읽으면 대답의 방향부터 달라집니다. 질문을 호기심으로 받아 가볍게 설명했는데 상대는 데이터를 더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면, 회의는 어긋난 채로 끝납니다.

'That's an interesting approach.'와 'I'm curious about how you handled the controls.'가 실제로는 '설득되지 않았다', '대조군이 충분한가?'를 뜻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손그림
'That's an interesting approach.'와 'I'm curious about how you handled the controls.'가 실제로는 '설득되지 않았다', '대조군이 충분한가?'를 뜻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손그림

4. 미팅: 타이밍을 놓치면 할 말이 사라집니다

회의에서는 결국 사람이 말해야 합니다. 특히 임원이나 외부 파트너가 참석하는 중요한 미팅일수록 높은 수준의 질문과 답변이 짧은 시간에 오갑니다. 머릿속에서 한국어를 영어로 조립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다음 주제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납니다.

  • 이것은 미국 회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 회사에 다니면서 영어권 파트너와 계약을 협의하거나 프로젝트 미팅을 하는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에서 질문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답을 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핵심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기술력과 경쟁력이 부족한 회사로 비쳐 기회를 놓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해법은 자주 쓰는 표현을 입에 붙여 두는 것입니다. 답을 바로 모를 때 시간을 버는 표현도 그중 하나입니다.
  • "That's a fair point." (맞는 말씀입니다.)
  • "Let me double-check and get back to you." (확인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Could you help me better understand your question?" (질문을 제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런 문장이 자동으로 나오면, 생각할 시간을 얻으면서 회의의 흐름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영어를 조립하는 사이 회의 주제가 계속 넘어가는 모습과, 자주 쓰는 표현을 준비해 두자는 해법을 그린 손그림
머릿속에서 영어를 조립하는 사이 회의 주제가 계속 넘어가는 모습과, 자주 쓰는 표현을 준비해 두자는 해법을 그린 손그림

5. 회의 밖의 대화: 신뢰는 번역기로 쌓을 수 없습니다

관계는 회의 중뿐만 아니라 회의 전후에도 쌓입니다. 시작 전 2분의 가벼운 대화, 점심, 커피 한 잔에서 상대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합니다. 협업과 승진의 기회도 이런 자리에서 자주 생깁니다.

  • "How was your weekend?" (주말 잘 보내셨어요?)
  • "How did the site visit go?" (현장 방문은 어땠어요?)
  • "Did you get a chance to look at the data I sent?" (보내 드린 데이터 볼 시간 있으셨어요?)

이런 스몰톡이나 가벼운 업무 대화는 번역기를 꺼낼 틈도 없고, 설령 번역을 거치더라도 사람 사이의 신뢰를 대신 쌓아 주지는 못합니다. 상대가 "이 사람은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자산입니다.

회의 전의 잡담과 회의 후의 후속 대화가 신뢰를 쌓는다는 것을 타임라인으로 그린 손그림
회의 전의 잡담과 회의 후의 후속 대화가 신뢰를 쌓는다는 것을 타임라인으로 그린 손그림

6. AI를 더 잘 쓰기 위해서

마지막 이유는 가장 역설적입니다. 영어를 알수록 AI를 더 잘 쓸 수 있습니다. 요즘은 Claude Code 같은 도구로 누구나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AI를 잘 다루려면 결국 자연어(natural language)로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시는 영어로 할 때 가장 정확해집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AI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을 때는 영어로 쓰는 편이 한국어로 쓰는 것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논문을 써 보신 분이라면 아마 공감하실 것입니다. 영어는 글을 체계적으로 쓰는 방식이 잘 정립되어 있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를 낮춰 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 밖에도 영어를 알면 이런 점이 좋아집니다.

  • AI가 내놓은 여러 안 중에서 맥락에 맞는 문장을 고르는 일도 영어 실력입니다.
  • 결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AI가 만든 문장을 믿고 보낼 수 있습니다.

결국 영어와 AI는 경쟁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영어를 아는 사람이 AI를 쓰면 속도와 품질이 함께 올라가고, 영어를 모르면 AI가 만든 문장을 확인하지 못한 채 보내야 합니다.

정리하면

  • 스피드: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은 익숙한 영어로 직접 쓰는 쪽이 대체로 빠릅니다.
  • 검수 능력: AI가 쓴 문장의 톤이 맞는지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 행간 읽기: 단어가 아니라 의도를 읽어야 대답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 미팅: 짧은 시간에 오가는 Q&A에서는 자주 쓰는 표현이 입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 회의 밖 대화: 관계와 신뢰는 직접 말하는 대화에서 쌓입니다.
  • AI 활용: 영어를 알면 AI에게 더 정확히 시키고 결과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영어 한 스푼: 이 글에 나온 표현

read between the lines 행간을 읽다, 말 속의 숨은 뜻을 파악하다
You have to read between the lines when someone says the approach is interesting.상대가 접근이 흥미롭다고 말할 때는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come across as ~처럼 들리다, ~라는 인상을 주다
This sentence might come across as too direct for a senior director.이 문장은 시니어 디렉터에게는 너무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small talk 가벼운 잡담, 스몰톡
A little small talk before the call helps build trust.미팅 전의 가벼운 대화가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됩니다.
get back to you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다
Let me double-check and get back to you by end of day.확인해 보고 오늘 중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퀵 체크

Q1. '제가 확인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Let me ______ and get back to you.
정답: double-check
Q2. '따로 얘기하죠.'라는 회의 표현은? Let's take it ______.
정답: offline
Q3. '질문을 제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겠어요?' Could you help me ______ understand your question?
정답: better
Q4. 'That's an interesting approach.'는 항상 칭찬일까요? (예 / 아니오)
정답: 아니오 (완곡한 반대일 수 있습니다)

AI는 앞으로도 빠르게 좋아질 것이고, 저도 계속 쓸 것입니다. 다만 영어를 알면 그 도구를 더 빠르고 더 안전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지난 10년 넘게 현장에서 느낀 결론입니다.

이 블로그는 그 영어 중에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연구실과 회의실에서 실제로 오가는 표현을 골라 정리합니다. 이 글을 읽고 "이럴 때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싶은 장면이 떠오르셨다면 아래 '질문 남기기'로 알려주세요. 다음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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